*평평한 충돌(Flatten Collision), 2023

평평한 충돌'은 사진의 재현과 회화성을 실험한 작업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선명하다 못해 눈이 부실정도로 해상력을 높인 현대의 카메라는 재현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기술복제의 시대를 넘어 인공지능이 정말 ‘사진 같은’ 이미지를 생성하는 시대에 사진가는 과연 무엇을 찍고 어떤 이미지를 생산해야 하는가? 작가가 ‘찍은 사진’과 인공지능이 만든 ‘생성 이미지’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작업은 이와 같은 고민에서 시작했다.

사실 사진작가로서 늘 회화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대상의 형태를 똑같이 재현할 수밖에 없는 사진 매체의 한계는 인간의 무의식에 따라 자유롭게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회화에 대하여 질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누구나 손에 쥐고 다니는 휴대폰의 고성능 카메라가 찍는 수많은 이미지들 사이로 작가가 찍은 사진은 크게 달라 보이지도 않는다.

모더니즘 시대 존재 증명의 사진은 이제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그 사진의 권위를 내려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사진매체에 대한 위기의식은 어찌 보면 동시대 사진예술가에겐 큰 위협이자 도전의 시기이기도 하다. 작가의 작품은 시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사진을(이미지를) 찍어야(만들어야) 하는가?

작업은 비평가와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매체가 가진 약점을 고스란히 표면 위에 드러내도록 하는 것’

실수로 생겨난 이미지의 자국은 지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사진을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의도적이지만 무의식적인 손의 움직임은 프로그램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했고,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의 지점을 찾기 시작했다. 작가에 의한 개입과 예측 불가능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대상을 선명이 기록하는 사진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재현 불가능한 추상의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주목할 점은 프로그램이 수행하며 동시대의 기술적 한계가 만들어 내는 ‘결함의 자국들’이었다. 오직 인화지 위에 잉크를 평평히 뿌릴 수밖에 없는 사진의 표면 위에서 이러한 자국들은 뭔가 새로워 보였다.

일명 ‘사진의 마띠에르’라 말할 수 있는 이러한 ‘이미지의 자국’은 사실 사진적 결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세밀하고 정확히 대상을 표현하는 사진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플랫 한 인화지를 지지대로 삼을 수밖에 없는 사진은 물감을 쌓아 올리는 회화의 표면과 구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진이 더 사진답게 보이기 위해 오히려 더 사진스럽지 않게 되는, 재현을 넘어 회화처럼 추상으로의 가능성을 탐하지만 결국 사진의 특성이 오히려 더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은 만들 수 없는, 사진의 길은 여전히 험난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