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마고할미 (Buddha and Magohalmi), 2021

경기문화재단 작품 제작지원
Support fund for the project, Gyeonggi Cultural Foundation, Korea 2021

작품 <부처와 마고할미>는 대부도의 불도와 관련된 설화에서 출발한다. 불도에 관한 기록은 1864년 지리학자 김정호가 쓴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처음 등장한다. “옛날 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던 중 바닷가에서 부처를 건지고 이를 자기 집으로 가져와 불당을 만들어 정성을 드렸다. 그곳을 ‘불도’라 하였다.”
작업은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여 부처의 행방을 찾는 과정이다. 또한 주변 지역의 옛 지명을 조사하던 중 우리나라 설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마귀할멈(마고할미)과 관련된 흔적을 발견하고 함께 추적한다. 지역의 향토사학자, 무속인, 지역 주민을 만나 리서치하며 옛 지명에 얽혀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한 지역이 지나온 시간을 들여다보며, 이것이 현재의 모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영상과 사진으로 재구성한다.
작업은 5채널의 영상과, 오브제 설치, 사진으로 구성되었다.

신화라는 복화술의 손길 혹은 현현하는 속살로서 하늘여신, 정정호 작가

김남수(안무비평)

#1. “암시된 거미는 신화를 만드는 것들을 발생시키며, 따라서 신화를 만드는 것들에 의해서 암시되어 있다.” (웬디 도니거, <암시된 거미> 중에서)

#2.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사로잡으리로다.”(<누가복음> 5:1~11)

하늘의 환여신: 파티마와 마고
1917년 파티마 하늘에 태양의 춤이 시작되었을 때, 칠천명의 군중은 그 춤이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도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로 육박해온다고 믿고 혼비백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낙비에 홈빡 젖었던 옷이 잠시 후에 모두 말라버렸다. 그것이 태양이 가까이 다가와 그 열기로 말렸는지, 아니면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달아나는 운동 효과로 말랐는지 알 수 없다. 태양의 육박은 신지학적 미술이론가 칸딘스키에게는 예술이 진행하는 큰 방향 1) 상승 2) 육박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이 파티마 하늘로부터 땅으로 태양의 육박이란 점차 기존의 신학과 자본주의가 들러붙는 질서 그리고 유럽에서 고조되어가는 전쟁의 혼돈을 거부하는 것이었다면 어쩔 것인가. 그리고 그 춤의 안무가로 지목되는 자작나무 위의 환여신[幻女神] -흔히 ‘파티마의 성모’라고 일컫어지는 신격- 이 누구인지 안다면 어쩔 것인가.
칸딘스키는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에서 ‘정신의 삼각형’을 도해했다. 그 의미를 파티마의 기적에 빗대어 말하자면, 땅에는 칠천명의 군중들이 눈으로 보고 있는 현상을, 하늘과 맞닿는 하나의 꼭지점에는 비가시적으로 예견하는 ‘정신의 한 인간’의 실존을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삼각형 내부는 무한한 주파수로 떨리는 ‘숨은 차원’의 영역인데, 그 차원 세계로부터 끊임없이 공급하는 에너지는 중력처럼 다른 차원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중력은 현재 우주를 구성하는 4개의 힘들 중에서 가장 미약한 힘으로만 존재하고 있지만, 이 삼각형 내부의 에너지는 ‘숨은 차원’의 잠재력 그대로 진동하고 있다. 왜? 환여신의 다음 미래를 기약하기 때문이다.
정정호 작가의 전시 <부처와 마고할미 Budha and Magohami>(2022. 2.3-13)를 보는데, 이 작가가 그 이전에는 도시의 시간적 풍토와 기억을 머금고 쇠락해가는 가운데 신화적 징후와 기호를 풍기는 순간의 사진술을 보여준 것과 달리 자신의 내면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낭만주의적 기질을 온전히 폭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나이브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대담무쌍하게 자신의 영매적 현존을 수락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이는 <레저타운>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 같은 사진집 속에서 엿보이는 그 시간적 소진의 균열 사이로 전격적 유출이 일어나는 어떤 현상을 포획하는 것만으로 작가가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읽혀졌다. 그럼 무엇인가. 그 사진술 속에서 암시된, 생명의 실들을 줍기 시작하는, 그러면서 나름 도시와 작가의 실존 사이 접경지대에서 새로운 신화적 부분을 구축해가는 작업들이 그 다음 단계로 점프한다고 할까. 언제나 시간 속에서 형해화되는 도시의 사물들은 우리 자신의 주위를 선회하는 동시에 그러한 과정으로써 보이지 않는 제3의 면을 형성하여, 이 두 가지 -사물들의 선회와 보이지 않는 제3의 면- 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한 퍼스펙티브가 정정호 작가의 사진에서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퍼스펙티브 자체가 어떤 임계점 근방에서 ‘은폐된 나레이터’의 목소리를 안으로 여미고 있다고 할까. 그런 점이 ‘마고’라는 환여신이라는 것을 호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늘여신으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린, 완전히 격하된 신격으로 떠돌고 있는 그 이름을 부르며.

복화술과 은폐된 나레이터의 출현
파미르 고원에서 기원한다는 ‘마고’ 여신은 <부도지> 같은 문헌에서 시원문명의 중심이 되는 신[神]으로 여기는 인식이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매우 미약하다. 이 여신은 메소포타미아의 이난나-이슈타르 여신이나 일본의 아마테라스 여신과 유사한 면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태양의 여신도, 달의 여신도 아닌, ‘하늘 여신’이란 것이다. ‘하늘 여신’이란 바느질 자국 없는 하늘 자체를 자신의 신체와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신이며, 자신의 권능을 행사하기 위해서 태양과 달, 때로는 번개를 수하로서 거느린다. 말하자면 파티마의 ‘하늘 여신’은 태양더러 춤추게 한 것이다.
정정호 작가는 그러한 신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미 망각해버린 ‘하늘 여신’이라는 신격 자체도 재구축해야 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마고’가 한반도의 서해안과 동해안을 양쪽 다리 하나씩으로 걸쳐서 한반도 하늘 위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리우는 스토리텔링을 수용하고, 그 공식적인 이야기 안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은폐된 나레이터’의 묵시[默視]를 내보인다. 그것이 서해안 대부도 연안에 있는 거대한 바위, 거의 22억 년 선캄브리아기에서부터 2억년의 중생대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기억을 ‘붓다’라는 기호 속에 감춰두고 있는 바위를 제시한다. 이 바위의 영상과 사진은 ‘마고’라는 환여신이자 하늘 여신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왜? 스스로는 증언하지 못할 이야기를 복화술처럼 사진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 그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어떤 ‘듣는 눈’이 있어서 이 이야기를 감은 상태의 눈이 함께 떨리면서 동행할 것인가.
<부처와 마고할미>는 대부도 불도의 설화를 꺼내온다. 바닷가에서 부처상을 건지고 그로부터 절을 지어 정성을 드렸다는 것이다. 이 간단한 설화 속에는 ‘하늘 여신’이 배제되는 은폐된 이야기가 행간에 깃들어 있다. 그러므로 정정호 작가가 그 불도 설화의 곁에서 발굴해낸 ‘마고할미’ 설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 여기에는 물을 다스리는 수신[水神]으로서 미륵[=‘미르’가 옛말로 “물”이라는 뜻. 또한 ‘龍’을 뜻함]이란 선재했고, 나중에 침범해온 이국의 신격이 부처인 셈이다. 이리하여 함경도부터 제주도까지 ‘석가와 미륵의 결투’라는 라이트모티프가 한반도 신화의 중추신경을 이루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미륵의 ‘감은 눈’이 석가의 ‘뜬 눈’에 당하여 이 세상은 사기술을 행사한 석가, 즉 부처의 통치 하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용호상박의 결투에서 빠져 있으면서 동시에 그 부재[不在]로서 존재[存在]를 드러내는 것이 ‘하늘 여신’이다. 다름아닌 ‘마고할미’이다.
<마고의 먼지>라는 사진 속에서 우리는 장엄화려한 오렌지톤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하늘 여신’의 권능 한 톨이 백힌 거대한 바위를 목도할 수 있다. 이 먼지로 지칭되는 바위는 ‘하늘 여신’을 감안한다면, 찢어진 하늘을 깁기 위하여 하늘로 자기 몸을 재우쳐 올라가는 여와신이 손에 든 그 깁는 바늘로서의 오색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 아득한 궁창에 떠 있는 돌이 어느덧 여신의 격하와 더불어 서해 한 구석진 곳에 추락하여 은인자중하고 있다고 할까. 그러나 그 여진은 그대로 남아서 바위에서 풍기는 예사롭지 않은 상서[祥瑞]의 아우라가 감돌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신화학자 웬디 도니거가 말하듯 작가가 ‘암시된 거미’가 되어 스스로의 실을 뽑아내어 생명의 베를 짜는 행위이다. 심한 망각과 편견의 어둠 속에서 어렴풋한 박명[薄明]의 가냘픈 수평선 속에 그 모든 것은 갈무리되어 있지만, 언제나 복화술 속의 ‘은폐된 나레이터’가 정정호 작가가 구사하는 것처럼 매체를 뛰어넘어 거미줄로 짜는 직물, 신화의 이면에 있는 경험을 들려주는 법이다.

“깊은 데로 가라!” 어떤 손의 춤
정정호 작가가 ‘마고’ 신화를 꺼집어내면서 그 신화적 복화술 속에 깃든 비밀들이 노출되는 혹은 새롭게 직조되는 과정에는 하늘과의 접촉[接天術]이 필요하다. ‘환여신’이자 ‘하늘 여신’으로 지목되는 이 신격이 자신의 신체 자체를 가없는 하늘의 진동하는 세계와 동일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칸딘스키가 말하는 ‘정신의 삼각형’ 구도에서 칠천명의 파티마 사람들에게 감각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시 인간의 몸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늘과의 접촉은 다름아닌 인간의 몸과 어떻게 만나는가 하는 데서 비로소 깊어지고, ‘하늘 여신’의 현현이 단순히 이미지적 환신[幻神]이 아니라 육화[肉化]로서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이 고대에서부터 하늘이 인간과 서로 느낀다는 차원이 아닌가.
정정호 작가는 이 ‘깊은 데’의 세계를 처음부터 보여줘온 바, 그의 사진집 <白의 發話>는 “본바탕인 백의 세계로 복귀하면서 백색끼리 자아내는 선의 유희”(유헌식)가 창세기의 흑암을 제쳐놓고 다시 한번 태초의 빛으로 출현하는 권능을 암시한다고 할까. 동양의 고요와 삼투하는 ‘살’의 이미지가 이 흑백의 사진 속에서 불연[不然, 아니다]이면서 기연[其然, 그렇다]라는, 나아가 불연기연[不然其然]하는 세계로서 현상되고 있음이다. 이 세계야말로 자연이 자연 -스스로 그러함- 이면서 동시에 주어진 자연을 벗어나 대자연의 이면에 태초부터 도사려 있던 비밀스런 자연을 엿보게 하는 영역이 아닌가 한다. 사진으로 이처럼 자연이 육화되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그 이후 작가가 참여했던 사진집 <고수의 도구>에서 어둠 속의 손이 발랄하게 춤추는 퍼포먼스가 극히 간명한 언어의 수행문과 접촉하는 단면에서 접천[接天]하는 느낌, 사람의 손이 ‘환여신’의 손길처럼 다가드는 느낌이 생겨난다.
지금은 모던의 멸망 시대, 더 이상 마르크스가 주재한 역사주의적 시간의 흐름이 말라버린 시대이다.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란 법이 있는가. 시간은 우리보다 고작 5일 전에 태어났을 뿐인데.” 라고 말하던 그러한 시간관이 시간을 다 쓰고 좌초한 상태. 그러할 때, 정정호 작가가 하고 있는 것은 공식적인 역사, 도시 인문학, 진보하는 세계 이면에 복화술로 이야기하던 ‘은폐된 나레이터’가 제 목소리를 조금씩 내기 시작하는 것 자체, 다름아닌 그 목소리가 ‘하늘 여신’ 자체라는 것을 과격하게 그러면서도 내밀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새로운 비전을 엿보려면 말이다. 정정호 작가는 그러한 비저너리의 세계로 점점 깊이 들어가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정신의 삼각형’ 맨꼭대기에서 고독하게 접천술[接天術]을 행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본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