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플러그연수 제작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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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산업의 역사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이곳 인천의 연수구는 60-70년대 송도유원지로 유명했다. 그러나 2011년 9월 정식 폐장 이후 이곳은 한국 중고 자동차 수출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국내 중고차 수출 물량의 72%가 이곳을 통해 수출되고 부가가치 효과가 1조 원가량이 되는 외화벌이의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이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에서 많은 해외 이주민들이 유입되었다. 연수구 중고차 단지 지역 주변으로 자동차 관련 수리업체가 생겨났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숙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아랍어로 써진 식당들이, 술집이 그 뒤에 생기게 되었다.
중고차 거래가 많아지면서 옥련동 주변으로 많은 중고 자동차들이 도시 골목마다 주차되었고, 주민들은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이미 옛 송도유원지 부지에는 불법으로 증축되어 사무실로 사용되는 컨테이너 박스와 차량들로 가득 찼고, 계속 밀려드는 중고차를 감당할 수 없어 옥련동 도시 곳곳에 번호판 없이 길가에 주차되어 있다. 사실 모두 불법이다. 구청장들이 바뀔 때마다 공약으로 내세워지는 게 이곳 중고차 단지를 외부로 이전하는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이전부지 선택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군산, 평택 등 다른 항만도시가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이 중고차 단지를 유치하고자 경쟁한다.
송도 중고차 수출 단지 안을 돌아다니면 90%가 외국인이다. 아니 여긴 한국말이 간혹 보이는, 중동이라 하는 게 맞겠다. 외부의 사람들이 보기에 이곳은 매연, 소음과 먼지를 유발하는, 땅값을 저하시키고, 심지어 위험해 보인다고 말하지만 이곳 역시도 누군가의 가족을 위해 열심히 생계를 이어가는 커뮤니티의 집단이었다. 때가 되면 알라신을 위해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고 오후 6시가 되면 붉은 노을을 뒤로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삶과 크게 달라져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이곳 역시도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사라질 풍경이다. 지금 이곳의 장면은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이라도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이곳에 우리가 타던 낡은 자동차가 있었고, 그리고 그 안에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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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으로 압축하기 곤란한 동시대적 자취를 기록하기
심소미(독립큐레이터)
정정호의 신작 <아라베스크>는 그가 입주해 있는 아트플러그 연수의 인근에서 촬영되었다. 인천 연수구의 예술가 레지던시에 입주하여 구글 지도부터 살핀 그의 눈에 띈 것은 엄청난 규모로 자리한 중고자동차매매단지였다. 몇 해 전 이미 서울의 장안평에서 중고자동차단지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한 터라, 그의 시선이 이곳으로 향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컴퓨터 화면으로 그가 단지 내부를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니, 작가가 “이 땅은 원래 아름다운 호수와 수영장이 있던 유원지로, 인천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본 낭만적인 거리였어요. 꽃게 거리라는 식당 거리로도 유명했고, 호텔도 많았고요”라며 장소에서 지워진 이야기로 운을 띄운다. 그제야 송도유원지에 대한 오래된 기억이 뇌리에서 찬찬히 떠올랐다. “송도 갈래? 월미도 갈래?” 인천의 옆 도시인 부천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내게 송도는 가족 나들이로 자주 가던 장소였다.
옛 송도유원지였던 중고자동차매매단지는 60-80년대 국민 유원지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90년대 중반까지 수도권의 대표적인 여가 장소로서 자리했다. 서울의 외곽에서 도시민의 탈출구처럼 기능하던 유원지 문화는 90년대 후반 이후에 등장한 대형 놀이시설과 새로운 여가시설로부터 밀려나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사라져 갔다. ‘어린이날’이면 인천에 가는 것이 소망이었던 내게도 송도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진 지 오래이다. 이제는 스마트도시 송도로 먼저 떠오르는 이 명칭은 본래 일제강점기 시절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당시 근대식 휴양지로서 개발된 신도시 송도에는 인공 해수욕장이 있었고, 이 모래사장을 만들기 위해 무의도에서 모래를 실어 날랐다고 전해진다. 근대의 식민지 상흔을 거쳐 63년부터 40년이 넘게 수도권의 대표적 휴양지였던 이곳은 2011년 송도유원지가 폐장하고 그 한가운데에 자리하던 거대한 호수가 땅으로 매립되는 또 한 번의 인공적인 개조 과정을 거치며 글로벌 도시 자본의 전면적인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이후 번복된 개발 계획으로부터 방치된 땅에 중고차 사업체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고, 남반구 국가들로 향하는 수출산업의 중심적 장소가 되면서 현 규모의 대대적인 중고차매매단지가 된 것이다.
대부분 아랍계 외국인만이 오가며 지역사회와의 교류가 없는 이 장소에 대한 주민들의 감정은 다소 부정적이고 복합적인 편이다. 집집마다 과거의 시간을 환기시키는 사적인 기억이 존재하기에 그러한 개인적 낭만이 깃든 장소에 낡은 기계 부품들이 누적되어가고, 길가에는 번호판도 없는 차들이 끝없이 이동하고, 토속적인 식당 거리가 낯선 아랍 식당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이 불편했을 것이다. 이러한 구획과 분리의 시선을 뚫고 장소의 내부로 작가를 이끈 것은 그가 이전 작업에서도 사진을 통해 추적해온 도시문화의 변형과 흔적에 대한 궤적을 따른다. 그 대표적인 작업으로 작가가 경기창작센터에서 머물며 작업한 <레져타운>(2020)은 대부도를 중심으로 교외 여가문화의 흔적과 잔재를 담고 있으며,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2018)는 서울의 장안평 지역에서 재개발의 위협으로부터 머지 않아 사라지게 될 중고차매매단지를 기록한 작업이다. 이번 송도에서의 <아라베스크>(2022)는 두 작업의 연장선 상에서 글로벌 자본의 영향 하에 놓인 도시공간의 변형과 지역사회와의 간극, 그 내부에서 삶을 작동시키는 미시적 현장에 대한 인간적 시선을 담고 있다.
정정호는 이 작업에서 장소가 지닌 중층의 배경 및 노스텔지어적 시선을 사진의 미장센으로 의도하고 있지 않다. 이보다는 다소 무질서해보이는 중고차매매단지의 내부로 들어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삶의 작동방식과 대상과의 관계를 기록하는 데 있다. 자동차들로 이뤄진 거대한 도시와 같은 이곳에서 작가가 이동 수단으로 삼은 것은 자전거로, 좁은 길들을 지나가며 현장의 외국인에게 경계심을 주지 않고 슬며시 기록하고자 한 의도가 담긴다. 이번 작업이 금지된 장소에 들어가 현장을 고발하는 르포 사진의 한 장면과 같이 보이는 이유는 그러한 시선의 거리감과 신체적 위치에 있다. 촬영된 사진에는 종종 피사체가 흔들려 있고, 초점이 잘 맞지 않거나, 구도가 사선으로 휘어진 장면을 볼 수 있다. 기존에 장안평에서 찍은 중고차매매단지의 사진과 비교해 본다면 서로 상반된 구도를 지닌다. 이전의 사진이 인식되지 못한 기계 부품들의 신체성을 대상의 유기적인 구조로서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다면, 이번에는 대상으로의 접근 불가능성 혹은 응시의 어려움을 사진의 프레임으로 담아낸다.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곳이었기에 내부를 면밀히 응시할 수 없는 작가의 신체적 상황은 자전거를 타고 스친 찰나의 마주침으로 새겨진다. 여기서 그의 사진이 새긴 결정적 순간은 응시와 시선 사이에 남겨진 현장과 대상의 물질성이다.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의 간격과 거리감은 도시 한가운데에 고립된 이 장소와 바깥 세계 사이의 간극과 긴장감을 드러낸다. 초점이 나간 사진이 포착한 현장은 프레임으로 재단할 수 없는 중층의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 이곳의 장면은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이라도 기록되고 기억돼야 한다. 이곳에 우리가 타던 낡은 자동차가 있었고, 그리고 그 안에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정정호의 작가 노트에서 관찰되듯, 응시와 기록 사이에서 작가의 윤리적 고뇌는 사진의 최종적인 형식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가 제안하는 사진의 결정적 순간은 도시 문화의 한가운데서 쉼 없이 작동해왔지만, 자본의 욕망으로부터 한없이 불안정한 장소와 그 뒤로 남겨진 비가시적 대상을 포착하는 것과 관련한다. 격동의 역사로부터 수없이 변모해온 땅과 이곳으로 모인 폐기된 자동차들, 외국인 노동자와 그들로부터 외국에 보내져 생명을 이어갈 기계 부품들, 그리고 언젠가 장소에서 축출될 낡은 산업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사진의 프레임으로 압축하기 곤란한 동시대적 시공간의 자취를 전한다. 이러한 그의 사진은 오늘날 사진이 프레임을 통해 도시공간을 어떠한 방식으로 포착할 수 있을지 그 진중한 물음과 동시에 답신을 함께 남겨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