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타운(Leisure Town), 2020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사전연구리서치 기금으로 제작.
This works supported from Art Council Korea (ARKO)

상상의 레저

김윤서,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사

외출하고 돌아온 날 저녁, 그날 낮에 내가 다녀온 장소가 TV에 나오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여행지를 검색하고 난 뒤에 여행업체 광고 배너가 따라붙기 시작하는 것과는 다른, 순전한 우연이다. 평소 같으면 그저 넘겨버렸을 그 장면을 자리에 앉아 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내가 두 발로 딛고 서서 눈에 담아온 풍경과는 꽤 달라 보였다. <생방송 투데이>에서 보여주는 ‘겨울비경 랜선여행: 여행 본능 섬, 대부도’는 웅장하고 빛났다. 만남과 이동을 격려하지 않는 전염병의 시대에 여행에 대한 꿈은 미뤄지고, 집에서 하는 시각 경험으로 그 장소를 인지할 뿐이다. 여행 프로그램은 대부도를 해양레저도시로 소개했고 시청자는 그 레저가 무엇인지 알길 없이, 그저 수도권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관광지 중 하나로 대부도를 기억하고야 만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영어 단어 leisure는 라틴어 lecere에서 파생된 것으로, ‘허용되는’ ‘자유로운’이라는 뜻이 있는데, 하이퍼링크를 따라가 살펴보면 동일한 어원에서 출발했음에도 오늘날 그 의미가 무한해 무척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이 글의 제목에서 언급하는 용어의 개념, 즉 ‘레저’에 대해 정의하고 글을 시작해야겠지만 나는 그것을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대신 구글에서 ‘leisure’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본다. 알고리즘이 인식하고 있는 레저의 이미지는 야자수와 해먹, 백사장, 요트 따위가 어우러진, 새로울 것 없는 조합이다. 딱히 마다할 사람 없을 안온함과 여유로움을 상징하는 집합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끝자락에는 퍽 와닿지 않는 장면이기도 하다. 문득 장기간의 요트여행을 떠난 모 퇴직 교수에 대한 비난을 떠올려본다. 이 경우에는 한 개인의 버킷리스트 실행보다 외교부 장관의 가족이라는 정체성과 정치적인 맥락,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통이라는 시의성이 얽혀 있어 문제가 되었지만, 이는 여가에 대한 보통의 인식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레저’라는 개념은 일상의 부분으로 포함되기보다 특정한 공간이나 상황으로 격리됨으로써 신격화된 어떤 예술 작품을 닮았다.

레저타운, 2020
정정호는 대부도에 위치한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해 2020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대부도 곳곳을 촬영하고 이를 <레저타운>으로 칭했다. 정정호의 사진 연작에서 내가 본 것은 상상의 산물로서 존재하는 레저타운이었다. 사진은 <레저타운>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 제목이 지시하는 바를 찾을 수 없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사진 속에는 레저를 즐기는 사람이 없고, 찬란한 즐거움의 감수성도 느낄 수 없다. 대부도 곳곳을 담은 풍경 사진과, 정물화처럼 보다 가까이에서 촬영한 사물 사진, 두 개의 유형으로 구성된 <레저타운>은 펜션이 있는 풍경에서조차 그 어디에도 사람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멋을 부린 건축물을 기록한 사진보다, 스러진 비닐하우스, 어업 도구, 어린이 장화 따위의 사물 사진에서 새삼 그 도시를 지탱하는 사람들이 겹쳐 보인다. 정정호가 끌어올린 <레저타운>은 해변에 배 모양으로 지어진 건축물 파사드, ‘나폴리 펜션’ 앞마당에 겨우 마련된 잔디 족구장, 버려진 것인지 보관하는 중인지 알 수 없는 낡은 보트, 조악한 미감의 카우보이 동상, 과거에 가게 장식으로 사용되었을 법한 야자수 나무가 그려진 합판 따위들의 합이다. 바다라는 대자연을 빌어 이국적인 정취를 끌어내고자 한 이곳 사람들의 시도가 이제는 벗겨지고 스러진 채 덤덤하게 사진으로 제시되어, 수도권 레저 명소를 향한 도시의 바람과 전형을 읽을 수 있었다.
사진은 분명 많은 정보를 빼곡하게 담고 있지만 어느 도시 외곽에서 본 듯하고, 동시에 허구인 듯한 혼란스러움을 준다. 이 맥락 없음은 보는 이에게 장소성과 시제 정보를 흩뜨리면서, 눈앞의 피사체를 카메라로 잡아내고 이미지로서 지시하는 사진의 주요한 역할을 무력하게 한다. 앞서 장안평 기록 프로젝트에 대해 정현 비평가는 정정호가 사진의 극적 효과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평면적으로 촬영하고 있으며, 조금의 사적인 감정도 투사하지 않고 기록했다고 언급했는데, 그러한 태도는 <레저타운>에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스튜디오에, 전면을 가득 채운 비닐 뒤로 무성한 잡풀이 비치는 이미지를 크게 출력해 걸개그림처럼 걸어두었는데, 그것은 사진이라기보다 회화, 그것도 무척 평면적인 회화에 가까웠다. 작가는 사진을 담아낼 때 조형적인 요소, 가령 선(line)적인 요소의 배치에 주력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조형적 시도로써 스스로 대부도에 대한 감상과 평가로부터 한발 멀어지고자 한 것일까. <레저타운> 이전의 사진에서도 첫눈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조형성과 강한 즉물성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분쟁지역 기자를 꿈꾸던 그의 이력을 알고 있었음에도 “혹, 조각을 공부했는지?” 하고 우문을 던진 것은 작가 특유의 조형성 때문이다. 나는 비닐하우스 철골이 드러난 사진, 어업용품들이 뒤엉킨 사진들을 보면서, 대부도라는 동일한 물리적 환경 속에서 정정호가 찍는 사진은 어떻게 다른지 물었던 누군가의 질문을 떠올렸다.

제도의 꿈, 레저, 일상의 신성화
<레저타운> 연작의 물리적 장소는 안산시 대부도, 정확히는 바로 곁에 인접한 화성시 끝자락까지 걸쳐 있다. 작가와 나는 <레저타운> 연작에 담긴 현장 몇 군데를 직접 가보기로 했다. 답사는 형제수산 식당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장님과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메뉴판에도 없는 꽃게칼국수를 주문한 작가는 대부도에서의 생활에 무척 익숙한 듯했다. 작가는 경기창작센터에서 지역연계 프로그램으로 만난 학생들의 부모가 대개 어업, 해양레저, 펜션, 식당, 포도농장 등의 업종에 종사한다는 사실에서부터 이 도시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인지했다고 말했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양푼 칼국수를 들이켜듯 먹으며 창으로 내다본 산은 능선 곳곳이 꺼져 있었다. 대부도를 오고 갈 때마다 마주친 무수한 덤프트럭들이 싣고 가는 모래의 출처인 듯했다. “난개발에 신음하는 대부도” “대부도 갯벌 람사르 습지 등록”…… 대부도에 대해 상반된 이야기를 전하는 2년 전 기사들이 현재 대부도의 상황을 반영한다. 기사를 읽고 보니 대부도 갯벌이 궁금해졌다. 대부도는 관광지이기 이전에,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로, 바닷새들의 취식지이자 휴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동물뿐 아니라 바닷새들의 먹이공급원으로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는 갯벌의 생태계가 작동하는 곳. 2018년 10월 25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13차 람사르 협약 총회’에서 대부도 상동과 고랫부리 갯벌 두 곳이 람사르 습지로 공식 지정되면서 대부도는 또 한 번 주목받았다. 대부도 습지 등록의 근본적인 목적은 멸종위기에 처한 철새의 서식지 보호이다. 대부도는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을 지탱하는 데 주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한편, 희귀종과 천혜의 자원을 품은 곳이라는 제도의 검증은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대부도 개발로 이어졌다. 이미 상당한 면적의 갯벌이 사라졌다. 람사르라는 브랜드 가치에 힘입어 갯벌, 습지, 바다라는 공유지는 자본의 유입과 개발로 사유화되고, 협약의 주요 목적인 물새 보호는 당장 실행된 자본주의 이면에서 무력한 문서로 박제될 뿐이다.
개인적으로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마다 매해 한 번씩은 찾았기에, 스스로 대부도에 대한 인상을 꽤 선명하게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출발지에서부터 경기창작센터를 목적지로 한 경로, 그 사이에서 획득한 인상일 뿐이었다. 내가 대부도라는 지명을 처음 듣고 인지한 것은 2009년 경기창작센터 개관 소식 때다. 경기창작센터는 지금처럼 레지던시가 다양하게 생겨나기 전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고양 레지던시, 창동 레지던시 외에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레지던시였고, 국내 최대규모 창작센터로 알려져 그 개관 소식은 미술계에서 꽤나 뜨거운 뉴스였다. 개관 초기에 대부도에서 국제콘퍼런스, 오픈스튜디오를 연다는 소식에 경기창작센터 입주를 고대하던 작가들은 물론, 큐레이터,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대부도라는 곳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가야 하는지, 차량으로 갈 수 있는지 의견이 분분했고 그 와중에 도시의 존재가 각인되었다. 지금은 개관 초기에 비해 창작활동 지원과 인력이 매우 축소되었지만 경기창작센터가 문화예술 영역에 ‘대부도’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 한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창작스튜디오 관련 정책이 폐 산업시설을 활용한 문화예술 공간 조성사업 구도 속에서 유행처럼 단기간에 확산된 2000년대에 경기창작센터도 이런 흐름 속에서 옛 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를 새롭게 리모델링해 2009년 개관했다. 중앙 정부와 더불어 지자체마다 붐처럼 일었던 창작공간 조성 사업은 산업유산을 문화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도시 재생은 물론 ‘창조도시’로 거듭나, ‘지역문화 진흥’에 이르고자 하는 도시의 바람으로 추진되었다. 경기창작센터 역시 문화예술 창작자들을 중심으로 한 창조도시 조성의 꿈이 투영된 공간으로, 태생이 창작 활동에 대한 이해와 지원보다는 관광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창작스튜디오의 활용과 도시 이미지 쇄신에 무게가 실렸다.
이렇게 도시는 작가들의 시선과 기록에 빚을 져왔다. 관광도시에서 창작의 노동을 이어가는 작가들은 기존에 해오던 작업을 이어가거나, 창작센터 입지 환경과 자원을 바탕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도 한다. 경기창작센터 입주 기간에 <레저타운> 연작을 시작한 정정호는 후자에 속한다. 이전 작업에서 도시에 대한 면밀한 기록과 탐구를 축적한 그가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지내면서 대부도의 ‘독특한 풍광’에 남달리 주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정정호는 작업노트에서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변종의 모습”이 “놀랍게도 주변과 조화를 이뤄 묘하게 어울려” 보이는 까닭을 질문하며, 이를 “한국적 풍경”이라고 보았다. 이는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당도해 바다와 갯벌을 볼 수 있는, 무엇을 레저라 칭하는지 알 수 없지만 여차저차 하루는 즐겼다고 할 수 있을, 한국의 노동환경과 자본주의 체제에서 맞춤으로 준비된 레저타운이다. 작가는 매일같이 레저와 노동 사이에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이자 동시에 외지인으로서, 대부도의 주거문화, 놀이문화, 레저문화를 <레저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축적해갔다. <레저타운>을 주제로 한 1년간의 기록은 대부도의 사계절을, 어제 없던 것이 오늘 생겨나기도 하는 도시의 변화를 담고 있다. 그 결과물은 연간 8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수도권을 대표하는 일일 관광지’의 면면보다는, 한 생명으로서 도시의 변화에 가깝다. <레저타운>은 대부도를 그저 소리 없이 보여주는 11분 남짓한 영상과 사진 설치로 창작센터에서 전시되기도 했지만, 애초에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책의 형식을 빌려 발표하려는 계획이었기에 이 책을 통해 무수한 사진들 가운데 작가가 선택하고 배치한 결을 따라가도 좋을 것이다.

작가의 윤리
2020년을 보내고 2021년을 향하는 지금,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과 도시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목도하고 있다. 도시는 감염병과 기후변화, 건강에 대한 염려 속에서 사회적 약자는 물론 비인간의 실재를 드러냈다. 소수자는 도태되고, 자연은 착취됨으로써 자본은 꾸준히 창출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에도 기후위기, 자연재해, 이런저런 위기마다 인간과 비인간이 불평등하게 존재하는 도시는 양극화를 끌어안고 변화해왔다. 정정호의 작업에서 주목할 점은 그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의 변화를 기록하는 존재로서 도시에 대한 선입견을 배제한 윤리에서 나아가, 인간과 자본을 중심으로 축적된 도시 표면에서 드러난 것을 적게 보면서 도시를 그려내는 힘이다. 이는 브뤼노 라투르와 에밀리 에르망의 파리 탐구를 떠올리게 한다. 라투르는 파리를 보이지 않는 도시라고 칭하면서 에펠탑이 그려진 관광엽서, 여행안내, 관광객들의 사진에 드러나지 않는 것들로 도시를 탐색한다. 완성도 높은 도시의 표면을 지탱하는 지하 채석장과 지하무덤 카타콤, 지상 도로를 따라 지하에 조성된 하수도, 낮고 좁은 공간에서 무릎을 꿇고 몸을 웅크린 채 일한 수많은 노동자, 혁명과 도시의 생성 중에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의 존재를 통해 파리를 다시 구축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기, 정정호는 이처럼 사진을 매개로 도시에서 소리 내지 못하는 존재를 기록함으로써 질문을 던지고 사회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작가와 대부도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 작업실 문을 나서는데, 철문 앞에서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 하자면, 작가가 2019년 장안평 중고차 매매상가를 기록한 사진 속 고양이다. 『아카이브: 기계, 자동차 그리고 도시』(정정호, 2019) 사진집을 펼치면 한 권 내내 고철 덩어리가 들어차 비릿한 고철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데, 그중 거의 유일하게 사물이 아닌, 작가가 마주한 생명이다. 자동차 바닥 아래서 또렷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검은 고양이 사진 한 장은 170페이지 분량 사진집을 여는 첫머리에 놓여 작가의 시선과 태도를 감지할 수 있게 한다. 분쟁지역 기자를 꿈꾸던 과거와 현재 작가로서 그가 지향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한국전에서 전사한 전쟁 노무자 할아버지의 흔적을 좇으며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가족의 역사에서 비워진 존재를 현실로 호명해내고, 전쟁이라는 큰 역사에 묻힌 개인의 작은 역사를 다시 살려내고 위로하려 했던 작가는 가장 개인적인 동기에서 시작해, 사라지고 잊히고 생겨나는 주체들을 무덤덤하게 담아낸다. 그는 가장 낮은 곳에 몸을 감춘 작은 존재에 시선을 맞추는 예의 그 고유함으로, 그럼에도, 모두가 함께 좋은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는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