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시던스(Coincidence), 2018

KT&G 상상마당 SKOPF 프로그램 선정
Support fund for the project, KT&G SKOPF

작업노트 <코인시던스>

나의 할아버지는 전쟁 노무자였다. 국가의 부름에 응답해 총도 없이 지게를 메고 전쟁 물품을 날라야 했던, 민간인도 군인도 아니었던 사람. 미군들은 그들을 가리켜 지게부대(A Frame Army)라고 불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전사’라고 표현하셨지만 사실 그는 전쟁 통에 죽었으나 싸우다 돌아가신 것은 아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리서치를 위해 방문한 한 섬에서 갯벌에 갇히는 일을 겪었고, 작업은 그 경험에서 출발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낀 감정을 할아버지의 상황에 대입했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했다.

할아버지는 ‘철의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금화지구에서 돌아가셨다. 눈앞에 있지만 통제구역인 탓에 발 디딜 수 없는 곳이다. 할아버지라는 존재도 마치 닿을 수 없는 비밀 같았다. 어렸던 아버지의 몇몇 기억 외에는 할아버지 개인의 삶을 재구성할 정보가 거의 없었다. 관련 기관에 문의해봤지만, 할아버지는 전쟁 통에 돌아가신 수많은 사람 중 한 분에 불과했고 다른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국방부에서 편찬한 노무자와 관련된 논문과 전쟁 당시 미국의 기밀문서, 미군이 촬영해 기록으로 남긴 내셔널 아카이브의 사진 등을 통해 그때 벌어진 상황을 가늠해보고자 했다. 할아버지 개인이 아닌 노무자라는 사회적 존재에 관한 아주 미약한 정보로나마 한 개인의 삶을 재구성해 나갔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기리는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할아버지, 혹은 노무자의 흔적을 쫓으며 찾은 재료들을 모았다. 미군의 폭격장으로 쓰인 곳에서 수집된 탄피,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목격한 채 묵묵히 침식해가는 바위 조각, 외딴곳에서 썩고 있는 나뭇가지, 총 대신 등에 멘 노무자의 지게 등 할아버지를 기억할 만한 물건을 줍고 오브제를 만들었다. 그것을 줍고 쌓고 만들고 찍는 과정은 잊힌 존재인 할아버지를 다시 현실로 호명해내고 전쟁이란 큰 역사에 묻힌 개인의 작은 역사를 다시 살려내는 일이었다.

이 작업은 내 가족과 나의 삶에 내내 부재했던 할아버지를, 기껏 스물 남짓에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한 사람의 삶을 기리는 작은 추모이자 행위이다.

Artist Statement

My grandfather was a war worker. He was neither a civilian nor a soldier, but he had to carry war materials with an A-frame carrier instead of a gun, answering the call to defend the nation. The US Army called the unit made up of such people the “A-frame Army.” My father defined my grandfather’s death as “killed in action.” In fact, he did indeed die during the war but he was not killed in combat.

I was trapped by a mudflat while on an island I visited to research the death of my grandfather. My work has derived from this experience.

My grandfather passed away in a district of Geumhwa called the “Iron Triangle.” As it is a restricted area, nobody is allowed to set foot there even though we can see it with our eyes. His existence is like a mystery waiting to be unlocked. There is little information to reconstruct his personal life save for some of my father’s memories. Although I contacted the relevant institution to enquire about my grandfather, there were no records on him: he was one of countless others who were killed in the war. I tried to gauge the situation of that time through theses concerning war workers compiled by the Ministry of Defense, confidential documents from the United States, and photographs taken by the US army and housed in the National Archive. I have managed to reconstruct an individual’s life despite the dearth of information on the social being of war workers, not just individuals.

I created a ritual to pay tribute to my grandfather. I collected materials and objects pertaining to his life as a war worker. I collected any articles that were available to remember him by (such as empty shells gleaned at a bombing training range, shards of a rock that had been eroded in silence while witnessing everything from that time to the present, rotten boughs at a secluded site, and a Korean A-frame that a worker once carried on his back instead of a gun) and made objects with them. The process of gleaning, stacking, making, and photographing these articles helps to call to mind my grandfather who was forgotten in reality and breathe new life into an individual’s short history that was buried beneath the grave history of war.

This work can act as either a remembrance or an action to pay tribute to my grandfather who has been absent in my family and my life, or as someone who died around the age of 20 without knowing why he had to die.


안소현, 아트스페이스 풀 디렉터

정정호 작가의 작업에는 이야기가 강하다. 이야기는 물론 작업의 대상에서 흘러나오고, 그 대상들은 하나같이 오래된 것들(혹은 오래되어 보이게 만든 것들)이라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낙원악기상가에서 긴 세월 일한 상인들도, 익선동의 흔적들도, 호주 어느 댐도, 서울역 고가도 그리고 최근 작업에서 다룬 전쟁 노무자인 작가의 할아버지도 끌어낼 이야기를 한없이 품고 있다.

작가가 이야기를 품은 대상에 주목하고 그것을 프레이밍 하는 것은 익숙한 방식이다. 게다가 주요 매체가 사진인 경우, 우리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묻고 그 대상이 품은 이야기 안으로 끌려들어 가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문제는 대개 그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은 대상들은 너무 많고 도처에서 소비되며 그렇게 쉽게 망각된다. 물론 묻힌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망각에 저항하는 일이라고 믿고 싶지만, 이어짐을 본성으로 하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만큼 또 그렇게 흘러가버린다. 그래서 정정호 작가가 이야기를 그냥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떤 장치들을 만들었는지 관찰했다.

정정호 작가가 최근작 에서 다룬 전쟁 노무자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사실 ‘확인할 수 없음’에서 시작된다. 할아버지는 전쟁에 참여했지만 공식적인 군인이 아닌 민간인인 탓에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작가는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은 몇 가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백을 채워 나감으로써 할아버지의 윤곽을 찾으려고 한다. 실패는 예견되어 있었지만 작가는 추적의 행위를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손에 닿은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사물들을 사진으로 찍었다. 서울역 고가의 개발 과정을 찍어 땅에 파묻어 가짜 오랜 시간의 이미지를 만들었던 것처럼(<아키타입 7017>) 이 사진들에서도 버려진 금속과 진흙이 묻은 사물들에서 ‘오래된 것처럼 보이나 그 오래됨은 아닌’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사라짐을 막거나 복원해낼 수 없음, 즉 실패를 더욱 도드라지게 하는 작가의 이런 행위는 정서를 만든다. 우리는 명백히, 의도적으로 실효성이 없는 행위에서 제의적 의미나 허무의 정서를 읽곤 한다. 정정호 작가가 사물을 묻고 시간을 뭍히고 사건을 물어 찾는 반복적 행위들은 사라짐과 부재에 대한 애도의 끈적한 정서들을 불러낸다.

사실 이런 사라짐에 대한 정서는 꽤나 보편적이어서 그리 강렬한 것은 아니다. 간혹 별것 아닌 낡은 물건의 흠집도 그런 정서를 불러내곤 한다. 하지만 정정호의 사진들은 거기서 그런 정서를 다시 삭제하는 행위를 수반한다. 예를 들면 흙에 파묻어 구겨진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그대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스캔해서 다시 사진으로 만들었다. 사진을 찍은 사진의 배경에는 종이처럼 약간의 흔적들이 있는데, 간혹 흐릿한 도면의 이미지가 드러나 있기도 하다. 이것은 파묻은 사진을 이미지가 아니라 물성을 가진 입체로 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지만, 막 파내어 종이 위에 올려놓은 유물의 이미지를 준다. 이때 유물은 사적 추억이 아니라 객관화할 대상,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놓을 대상으로 인식된다. 상실에서 비롯된 축축한 정서는 이내 건조한 연구의 대상이 된다. 할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의) 사적인 기억에서 출발하여 찾아낸 사진들과 오브제들은 작가의 허무한 반복적 행위를 통해 추도의 정서로 젖어 있지만, 그것들을 찍은 사진은 전형적인 박물관의 유물 사진처럼 하얗게 배경을 없앤 (속칭 ‘누끼를 딴’)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작가의 애도는 수분을 잃고 박제가 된다.

정정호의 이런 상반된 행위의 조합은 관객으로 하여금 기록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와 정서에 몰입한 다음 쉽게 현실로 돌아와 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것은 망각에 대한 저항일 뿐만 아니라 일회성의 기억에 대해 다시 한번 저항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시도한 이른바 ‘포토 몽타주’ 기법 역시 다른 방식의 시간 경험을 기대하게 한다. 20세기 초 프로퍼간다 사진에서 종종 사용되었던 이 기법은 대상을 배경으로부터 잘라내서 켜켜이 쌓아서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화가 신학철이 사용했던 기법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그것은 사진에서 ‘외침’의 기법이다. 그러나 현재의 외침이라기 보다는 지나가고 한 물 간 방식, 어쩌면 대부분은 실패로 끝난 외침의 방식이다. 정정호 작가가 그 오래된 외침의 기법을 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쩐지 단순히 강한 목소리를 따라해보는 행위는 아닐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시간의 온습도를 바꾸고 목소리의 시간을 복잡하게 만드는 이런 작업들의 증식을 기다리게 된다.

<채우고, 기록하고, 연결하다> 신승오, 페리지갤러리 디렉터

정정호는 최근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만든 오브제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작가가 만들어 내는 오브제는 무엇이며, 그는 사진작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려 하는가? 작가와의 대화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이를 파악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작업의 출발점은 할아버지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한국전쟁에서 군인이 아닌 노무자로 강제로 동원되어 전선에서 사망한 할아버지는 작가의 가족 역사에서 비워져 버린 그늘진 시간이다. 작가는 자신의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도 이러한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역사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현재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한 행위로써 할아버지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전쟁 중 노무자들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조사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현장을 답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턱없이 부족한 자료들과 장소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문제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와 이미지들로는 한 개인의 지워진 역사를 다시 재구성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그는 이미 사라져버린 역사를 이러한 외부의 정보를 통해 바라보기 보다는 현재의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가 오브제 제작에 사용한 재료는 버려진 부표, 녹슨 철사, 철조망, 끈, 죽은 새, 탄피, 돌, 낡은 사진을 포함하여 자신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구조되었을 때 입었던 옷과 소지품 등 다양하다. 이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남겨진 흔적들이자, 왜 여기에 존재하게 되었는지 근원을 파악 할 수 없는 것들로 이러한 성향들이 할아버지의 역사와 맞물린다. 이러한 것을 활용하여 작가는 역사에서 잊혀진 할아버지를 위한 기념비 혹은 위령비 같은 상징적인 작업으로 재조합하고 사진으로 담아낸다. 그러나 작업이 점차 진행되어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진이라는 결과물 보다는 반복적으로 오브제를 만들어가는 시간 (재료를 찾기 위한 탐색, 재료의 수집하는 사이에 발생한 사건들, 찾아낸 물건들을 펼쳐놓고 새롭게 구성하기)속에서 드러나는 것들이 중요한 의미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새롭게 나타나는 의미들은 그가 만드는 오브제가 할아버지라는 대상이 부재하게 된 역사적 사건만을 부각시켜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포함하며 거기에 현재의 작가에 관련된 것까지 혼재되면서 여러 접점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는 과거를 현재로 끌어와 단순하게 존재시켜 한 방향으로만 읽히기 보다는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며 이로 인해 의미들을 다양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 필자가 관심 있게 보았던 것은 그의 사진이 결과물이 드러내는 의미보다는 이미지에 담겨 있는 오브제를 만드는 작가의 노동으로서의 예술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는 모습으로 읽히는 점이다. 그가 가족사를 통해 연결하고자 하는 할아버지, 아버지, ‘나’가 공통으로 해왔던 것, 이로 인해 서로 맞닿아 있는 것을 필자는 일상적인 노동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한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서 하고 있는 노동으로 채워진 삶, 아마도 살아가기 위한 일을 한다는 것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개인의 삶으로 특별하게 기록되지 못하고 비물질적인 기억으로 존재하다 사라진다. 그러나 작가는 현재의 오브제를 만들고 사진으로 담아내는 예술이라는 행위로 다시 이를 연결시켜 되살리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임을 작가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예정된 실패와 상관없이 무엇인가 만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들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기에 여기서 그의 사진은 이러한 자신의 행위로 인해 나타나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에 충실하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작가는 자연스럽게 서술자 이면서 동시에 서술의 대상이 된다. 사진에 드러나는 명확한 오브제의 제작은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이기도 하다. 그리고 작업 전반에 걸친 그의 예술적 행위는 그들의 시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다. 그러나 이 또한 온전히 모든 것을 나타낼 수 없고 일부분으로 밖에는 표현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정호가 이러한 지속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더 이상 생각할 수도 없고 말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의 불가능함, 결국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가진 한계에 최대한 맞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정정호의 작업은 지금도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는 작가 자신, 그의 가족들 더 나아가 우리들의 삶의 흔적들이 서로 이어지게 만든다. 따라서 그의 사진 작업은 이미 지워져 버린 것들을 다시 사유하기 위한 행위 그 자체이자 그것에 대한 기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